2022년12월13일은 박태준 전 포스코명예회장의 11주기.
사람은 특정 공간과 의미있는 사연이 있을 때가 있다.
TJ에게는 지금은 독립영화관으로 변한 포항 6거리 중앙아트홀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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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시립 중앙아트홀로 변한 현재의 건물 |
1974년 7월 22일 포항제철사장이던 그가 포항시민 시공관에서는 꽃피는 팔도강산 종영 및 제철소 조업 1주년을 기념 행사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서서 포항제철소건설을 성원해준 포항시민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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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은 1974년7월 포항시민회관에서 공식적으로 첫 인사를 포항시민에게 했다 |
그 후 1997년2월 그는 포항시민회관에서 박기환 시장으로부터 제1호 포항명예시민증을 받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1993년3월 정치적 유랑 길에 올라 4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던 그동안의 생활에 대한 회한 때문 만은 아니었다.
'박회장에 있어서 ‘포항’은 고향이상의 남다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7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종합제철 사령탑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기 훨씬 전부터 포항과 인연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 장교였던 박태준은 형산강 전투로 포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전투에서 그의 사촌형이 포탄 사고로 숨져 형산강에 뼈를 묻었다. 재일동포로 와세다대 대학원에 다니던 사촌형은 전쟁이 터진 조국으로 건너와 지원 입대해 병기 장교로 근무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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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2월 포항시민회관에서 박기환 당시 시장으로 부터 받은 명예포항시민증은 정계복귀의 발판이 되었다. |
포항명예시민증을 받아들자 그는 온갖 회한과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원래 김영삼 정권이 끝날 때까지 절대 귀국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그는 명예시민증을 받아들고 큰 결심을 하고 귀국시기를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명예시민증 받은 지 2개월 후 1997년 4월에 정계복귀를 선언하여 같은 해 7월24일포항시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11월에는 JP의 자유민주연합에 입당 후 당 총재로 추대되어 김대중과의 김종필간의 연합(DJP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제32대 국무총리가 된다.
<자료제공=경북기록연구회/콘텐츠연구소 상상>
이한웅 기자 newskore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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