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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콘텐츠의 힘" 직접 증명한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 성공적 마무리국가유산청 공모사업 중 모범사례로 주목받아…국내외 참가자 쇄도

올해 4월부터 이어온 포항 장기면의 역사 체험 프로그램이 11일 장기향교에서 마지막 순서를 마치고 2026년 한 해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국가유산청과 경상북도, 포항시가 주최하고 장기발전연구회(회장 이종길)가 주관한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부제: 코드명 학 세 마리)는 이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에 걸쳐 장기향교에서 열한 번째이자 마지막 프로그램 「물고기, 용쓰면 용된다 – 유생이 되어 등용(登龍)의 비밀을 밝혀라」를 진행했다.

@ 11일 포항 장기향교에서 열린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 마지막 프로그램 「물고기, 용쓰면 용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유생복과 유건 차림으로 정봉용 장기향교 전교를 따라 향교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역시 모두 정원을 넘겨 마감됐으며, 올해 운영된 11회 전 과정이 가족단위와 외국인참여로 국가유산청 '살아숨쉬는 향교·서원 국가유산 활용사업' 공모 선정 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됐다.

■ 유생복 입고 명륜당에서 치른 과거시험

마지막 프로그램은 정봉용 장기향교 전교의 인사와 장기향교 역사 설명으로 문을 열었다. 유생복으로 갈아입은 참가자들은 전교의 안내를 따라 향교 곳곳을 둘러보며,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공교육기관의 내력을 들었다.

@함께 참가한 아버지와 딸이 직접 만든 갓을 쓰고 서로 갓끈을 매어주며 웃음을 나누고 있다.

이어 선비의 완성, 갓 만들기가 진행됐다. 펠트 도안을 둥글게 말아 몸통을 세우고 챙을 붙인 뒤, 구슬 줄과 와펜까지 달아 저마다 하나뿐인 갓을 완성한 참가자들의 표정에 뿌듯함이 번졌다.

갓을 쓴 일일 유생들은 명륜당 마루에 앉아 과거시험을 치렀다. 붓을 쥔 손끝에 긴장이 서렸고, 답안을 제출한 참가자에게는 '장원엿'이 상으로 주어졌다. 장기향교 건물 곳곳에 새겨진 용과 물고기 문양 — 잉어가 거센 폭포를 거슬러 올라 용이 된다는 등용문(登龍門) 설화가 그대로 체험이 된 순간이었다. 문과 시험에 이어 향교마당에서는 무과시험이 진행됐다.

@일일 유생이 된 어린이들이 명륜당(明倫堂) 마루에 둘러앉아 등용문의 관문인 과거시험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 장기 효자 김시상, 그리고 '뇌록 10kg 공납하시오'

후반부는 「선비, 효를 배우다」 이어졌다. 장기지역의 이름난 효자 김시상의 이야기를 들은 참가자들은 '효자 밥상 차려효' 미션에 돌입했다.

김시상 효자 퀴즈를 풀며 미로를 탈출하고, 암호지를 해독해 '누가 용이 될 상인가'를 가려냈다. 마지막 미션은 "어명이오, 뇌록(磊綠) 10kg을 공납하시오". 조선시대 단청 안료로 쓰인 장기 특산 광물 뇌록을 찾아 바치는 임무로, 지역의 역사 자원을 미션에 녹여낸 대목이다.

■ "지역문화 콘텐츠의 힘"…작은 고을이 증명한 것

전국이 축제 홍수를 이루며 비슷비슷한 먹거리 부스와 초청 가수 무대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차별 정원 20명. 포항 시내에서 차로 40분 넘게 걸리는 오지 마을. 화려한 무대도, 유명 연예인도 없었다. 그럼에도 참가 신청은 매번 조기 마감됐고,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왕복 두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장기를 찾았다.

@참가자와 운영진이 장기향교 대성전 앞에서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규모가 아니라 밀도가, 예산이 아니라 콘텐츠가 사람을 부른다는 사실을 이 작은 프로그램이 조용히 증명해 보였다.

■ 철저한 로컬, 그것이 경쟁력이었다

성공의 비결은 철저한 '로컬'에 있었다. 프로그램은 어디에나 있는 전통 체험이 아니라, 오직 장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죽계 이대임의 학삼서원,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현판 두 점, 고려 현종 때 축조된 장기읍성, 효자 김시상, 단청 안료 뇌록. 이 지형과 유산이 그대로 무대가 됐다. 공간 자체가 콘텐츠였던 셈이다.

식재료도 마찬가지였다. 체험 음식에는 장기 특산물인 산딸기와 단호박이 쓰였다. 단호박으로 빚은 '독립군 비상식량' 인절미, 단호박 식혜, 장기 고구마 미니도넛까지. 참가자들은 체험과 동시에 이 고장의 땅이 길러낸 맛을 기억에 담아 돌아갔다.

■ 충효의 고장에서 배우는 예절…아이들이 달라졌다

충(忠)과 효(孝)의 고장이라는 장기의 정체성은 교육적 가치로 이어졌다.

어린이 참가자들은 유생복을 갖춰 입고 향교 마루에서 절하는 법부터 배웠다. 성현의 위패를 다루는 손끝에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고, 족자에 붓으로 이름을 쓸 때는 숨소리조차 낮아졌다."아이가 세 시간을 내리 집중하는 걸 처음 봤다"는 학부모들의 반응이 회차마다 이어졌다. 예절은 설교가 아니라 체험으로 전해질 때 몸에 남는다는 것을 현장이 보여줬다.

■ 외국인·미군 장병까지…장기에서 만난 K-컬처

주목할 또 하나의 성과는 외국인 유치다. 7월 17일과 9월 18일 두 차례 열린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 「K-선비, 오늘 나의 이름이오!」에는 포항 오천읍 무적캠프(Camp Mujuk) 소속 미군 장병을 비롯한 외국인 4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유생복을 입고 족자에 붓으로 한국식 이름을 적었고, 소고를 두드리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으며, 추석을 앞두고 호박전과 오색김밥을 직접 만들었다. 도심의 체험관이 아닌 포항 변두리 작은 고을에서 K-컬처를 만난 것이다.

@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어린 유생에게 붉은 비단에 쓴 교지(敎旨)가 내려지고 있다.

■ KTX매거진도 주목…국내외 시선 모였다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알려지면서 외부의 관심도 잇따랐다. 최근에는 KTX매거진이 현장을 직접 찾아 취재해 가는 등, 향교·서원이라는 지역 문화자산을 활용한 체험 콘텐츠의 모범 사례로 전국적 주목을 받고 있다.

■ "내년 예산 배정 어렵다"…아쉬움 속의 과제

그러나 반가운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 11일 프로그램을 마친 참가자와 운영진이 장기향교 명륜당 앞에서 두 손을 들어 환호하며 올해 11회 전 과정의 성공적 마무리를 자축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 사업을 '살아숨쉬는 향교·서원 국가유산 활용사업'으로 선정해 5년간 지속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국가 재정 사정 등을 이유로 내년도 예산 배정이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11회 전 회차 정원 초과, 외국인 참가자 유치, 전국 매체의 주목이라는 성과를 눈앞에 두고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지역에서는 ”검증된 콘텐츠를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치단체와 뜻있는 재단·기업의 후원으로 이 같은 체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억 원을 들인 일회성 축제보다, 적은 예산으로 내실있는 콘텐츠를 실행한 이 프로그램의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 프로그램 기획자 김혜욱씨는 "장기라는 작은 고을이 가진 충효의 역사와 선비 정신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것이 통했다"며 ”지역문화 콘텐츠의 힘을 올해 11차례의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올해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프로그램"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종길 장기발전연구회 회장도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일수록 사람을 불러 모을 콘텐츠가 절실하다. 어떤 형태로든 이 체험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이한웅 기자  newskore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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