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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특파원 함종혁, 慶州를 기록하다국립경주박물관 “경주를 기록하다. 특파원 함종혁”展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지난 9월20일부터 11월15일까지 신라미술관에서 특집진열 ‘소중한 추억, 나만의 보물’ 그 네 번째 전시로 <경주를 기록하다, 특파원 함종혁>을 열고 있다.

@그가 보도한 황남대총에 흙덮는 부인들 (동아일보 사진제공)

이번 전시는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1963년부터 1980년까지 활동했던 기자함종혁(1935~1997)의 유품과 기사를 통해 지난 날 경주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획전이다.

@향토사학자 고 윤경열씨와 함종혁기자(왼쪽)

함종혁은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63년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경주에 부임하여 “석굴암 최종결정 내릴 제1차 복원공사(1963.8.16.)”를 시작으로 “천룡사(天龍寺) 기와 가마는 사찰 전용(1980.11.24.)”까지 2백여 건에 달하는 기사를 동아일보 본사로 송고했다. 처음과 시작에서 볼 수 있듯, 기사 대부분은 경주의 문화유산에 관한 것이었으묘 특히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천마총, 황남대총 등 황남동 일대의 신라 능묘가 발굴될 때는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많은 문화관련 특종을 발로뛰며 경주에서 쏟아내기도 했다.

@천마총 목곽(사진제공=동아일보)

그리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도굴과 훼손의 위기에 놓인 문화유적에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는 등 그의 기사는 경주 문화 유적이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故 함종혁기자는 문화유산 뿐 아니라 경주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는 신라문화동인회,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에밀레극회, 경주시립국악원 등 경주의 문화 단체 및 예술인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다. 모두가 황남대총 발굴을 기다릴 때, 경주 사람들의 반대 의견을 알린 것도 그였다.

@그가 찍은 감포의 출향해녀 (동아일보 사진제공)

견습이발사로 이발소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무료로 고아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던 이상민씨의 이야기나, 입어권 조정에 한 숨 쉬는 감포의 해녀, 병에 걸려 하얗게 말라가는 벼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월성의 농민, 겨울철 잔디가 얼까 봉분을 덮는 부녀자들의 사진은 애정 없이는 포착할 수 없는 일상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냈다.

@경주특파원 함종혁기자의 카메라

함종혁은 호를 남천(南遷)이라했다. 고향 강원도 양양에서 남쪽의 경주로 내려왔다는 의미로 경주는 그에게 고향이나 다름없었다.그래서 그의 기사는 경주의 옛 모습을 꼼꼼히 담고 있다.

그의 기자 생활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지방주재기자 철수가 단행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이후 1990년 경북일보의 전신인 포항신문 편집국장, 경주신문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며 평생 언론인으로 살았다. 이번 전시는 아들 함지훈씨가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카메라와 사진앨범에서 시작되었다.

@아들 함지훈과

이한웅 기자  contentskore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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