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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은 본질을 바라보는 창(窓)이다
  • 신상구(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 승인 2017.08.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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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 위덕대교수/양동문화연구소 소장>

2005년 위덕대학교 교수가 되어 포항에 다시 왔다.  갈대가 참 많이 피었던 형산강 둔치, 수영만큼이나 홍합을 채취하는 것이 좋았던 송도 바닷가, 화석 모으길 유난히 좋아하셨던 선생님으로 인해 무던히도 많이 다녔던 두호동 일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유소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포항, 정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온 이곳에서 도시, 길, 공간, 장소성, 이야기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지역의 몇몇 교수님들과 뜻을 맞춰 함께 한 ‘형산강포럼’

도시 공간에 새로운 의미 불어 넣기라는 ‘장소만들기 프로젝트’. 그때가 2008년이다. 그 결과물이 ‘형산강에코트레일 구상’이다.
‘공간’의 ‘장소성’ 모색이라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었던 질문은 공간과 장소성을 얼마나 일치시키느냐에 대한 것이었고, 개념이 본질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는 스토리텔링을 비롯한 문화콘텐츠 관련 작업을 수행하는 연구자로서 공간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당위성을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 때 작업을 하면서 항상 떠올렸던 글이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곧, “도(ⓐ)를 도라고 할 때(ⓑ) (그것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할 때 (그것은 이전부터 불러왔던)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었다. 
『도덕경』의 맨 처음[1장]에 나오는 이 글은 수많은 의미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본질에 해당하는 원래의 도’를 하나의 의미와 가치로 개념화 할 때, 그 의미 속에 개념화된 도는 실제의 도인 본질과 같을 수 없다. 그러니 굳이 인위적으로 可道(ⓑ)라 개념화 함으로써 ‘道(ⓐ) ≠ 常道(ⓒ)’와 같은 불일치를 만들지 말라는 노자의 엄중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인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문화연구자로서 ‘가도’, ‘가명’이라는 ‘개념화의 과정을 더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오히려 얼마나 본질에 가깝게 개념화 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더 매달렸다.


본질에 가깝게 개념화하는 것의 중요성은 『논어(論語)』에서 나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사람 사이에서 말이 순조롭지 못하여 말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게 된다. 말이 맞지 않으면 하려는 일을 이룰 수가 없다.”라는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은 제대로 된 개념화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可道[도(ⓑ)]가 자칫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선입견을 심어 주고 자연을 객관성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지 못하고, 우리의 사고가 잘못 고착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말해 주는 노자의 생각과 닮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본질에 가깝게 하라는 것, 잘못된 이름과 개념을 부여할 때 본질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노자는 애초에 이름을 부여하지 말자는 것이고, 공자는 이름을 부여하되 바른 이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개념은 본질을 바라보는 창이다. 스토리가 도시를 풍요롭게 한다는 말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도시공간은 오랜 시간을 이어오며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니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통섭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신상구(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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