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간과 흙의 시간이 만나는 자리, 그 경계에 금(金)을 새기는 아티스트의 혼을 만날 기회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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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모듈-에너지> |
세라믹 아티스트 변보은 작가가 9월 17일부터 30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1층 전시실에서 개인전 '생의 결을 잇다―자연과 인간'을 연다. 2026년 경북문화재단 전시발간지원사업의 하나로 경북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경상북도가 후원한다. 오프닝과 아트토크는 18일 오후 5시.
백자의 매끄러운 곡면 위로 나무껍질을 닮은 거친 기둥이 얹힌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몸이 맞닿은 경계에는 가느다란 금(金)선이 지나간다. 장식이 아니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두 존재가 만나 관계를 맺은, 바로 그 순간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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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평면> |
전시장을 여는 첫 계열은 '연결된 생명(Connected Time)'이다. 수직으로 선 거친 표면의 형태와 절제된 백자의 형태를 한 구조 안에 잇대어 세운 연작으로, 흙과 세라믹 안료·유약에 영국 수금 24K를 더했다. 나무는 오랜 시간 성장하며 표면에 제 흔적을 새기고, 도자는 손과 불의 시간을 지나 전혀 다른 물성으로 변한다. 성질이 다른 두 시간이 맞닿는 지점을 금으로 봉합한 이 작업에서 작가는 "관계를 이루는 순간의 흔적"을 읽는다. 접합부를 따라 흘러내린 청색과 청록의 색유약은 자연이 지닌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에너지를 그대로 붙잡아 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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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된 생명> |
두 번째 계열 '시간의 평면(Plane of Time)'은 시선을 수직에서 수평으로 돌린다. 나무기둥을 직각으로 잘랐을 때 드러나는 동심원의 나이테, 그 안의 세포 구조가 출발점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번져 나가는 원형의 층은 나무가 통과해 온 시간의 축적이고,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선과 면은 성장이 만들어낸 불규칙한 리듬이다. 초벌 위에 색유약을 여러 겹 쌓고 불의 변화를 거치며 얻어낸 깊이는, 작가가 오랜 기간 자신만의 색유약을 연구해 온 시간과 겹친다. 백색 기물의 가장자리를 채운 식물 문양과 중심부의 녹청색 결정질 표면이 대비를 이루며,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의 흐름을 하나의 평면 위로 끌어올린다.
세 번째 계열 '나무-모듈-에너지(Tree_module_energy)'에서는 작업이 벽면 전체로 확장된다. 나무세포와 입자의 구조에서 출발한 작은 단위(module)를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 제작하고,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물리게 이어 붙였다. 검게 처리된 나무 형상의 판 위로 푸른색과 연둣빛 세라믹 유닛이 군집을 이루며 번져 올라가는 모습은, 개별 단위가 모여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과정 그 자체를 눈앞에 펼쳐 놓는다. 반복과 리듬이 곧 축적된 시간이자 생명의 에너지라는, 작가의 오랜 확신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작가의 궤적에서 찾을 수 있다. 변 작가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조율'을 주제로 작업했고, 2014년부터는 'About tree cells'를 축으로 나무의 세포와 생명력을 탐구해 왔다. 눈에 보이는 나무의 외형을 재현하는 대신 그 안에 숨은 세포와 생명의 구조를 조형언어로 끌어내는 것이 그의 일관된 태도였고, 비가시적인 식물 세포를 세라믹 부조로 옮긴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최근 몇 해 그의 작품을 관통한 단어가 '세포'와 '생명'이었다면, '생의 결을 잇다'에서는 그 시선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시간으로 향한다. 나무 한 그루가 수많은 계절을 지나 몸 안에 나이테를 남기듯, 사람 역시 살아온 시간 속에 저마다의 결을 새긴다는 것. 자연의 표면과 내부를 오래 들여다본 작가가 거기서 발견한 생명의 흔적을 인간의 삶과 포개어 놓는 자리다.
활동도 꾸준했다. 2021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보이는 세포, 보고 싶은 생명'을, 2022년 제천 박달문화원에서 '생명을 표현하다'를 선보였다. 2023년에는 중국 경덕진국제도자박람회 유네스코관에 참여했고, 2024년 경주아트페어와 K-아트페어 대전에도 작품을 냈다. 지난해에는 포항문화예술지원사업 시각예술 분야 성과공유전 '바람타고, 예술'에 지역 작가·예술단체 20팀과 함께 참여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이어왔다.
거친 흙의 표정과 매끄러운 도자의 표면, 그 사이를 잇는 금빛 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을 바라보던 시선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 쪽으로 되돌아온다.
변보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자연과 생명이라는 언어로 풀어낸 사유와 사색, 그리고 성찰의 기록이다. 작은 조형 하나하나에 삶을 바라보는 마음과 생명을 대하는 시선을 담았다."
이한웅 기자 newskore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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